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만년리 600-1번지에는 전라남도 지정 문화재료인 해동사와 안중근 추모 역사관이 있는데 해동사는 안중근 의사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양력 3월 26일에 추모 제향을 봉행하는 국내 최초 유일의 사당이다.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이곳 해동사는 안중근 의사의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장흥군 유림과 죽산안씨 문중의 발의로 1955년 만수사 부지 내에 건립하게 괴었다.

유림 안홍천이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해동명월(海東明月)의 호휘를 받아 현판을 걸고 해동사로 명명하게 되었으며, 위해 봉안식에는 달 안현생과 5촌 조카인 안춘생이 영정사진과 위해를 모시고 참석했다.

장흥 해동사 / 안중근의사 영정  (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 안중근의사 영정  (사진촬영 / 조경륜)

안중근 의사의 본관은 순흥이며, 고려시대의 유학자인 문성공 회헌 안양 선생의 26대손으로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성균관 진사 안태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8년 10월 26일 일본인으로 가장하여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러시아군대의 군례(軍禮)를 받는 이토히로부마를 저격하고 체포되었으며 뤼순 감옥에 수감되어 1910년2월 14일 재판에서 사형선고되었으며, 그해 3월 26일 순국(殉國)했다.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본명 조성녀)는 아들 안중근에게 마지막으로 쓴 편지에서 “장한 아들 보거라”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으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옮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은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壽衣 / 죽어서 입는 옷)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라~~~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아들에게 전 하는 어머니의 구구절절하고 애가 서린 가슴으로 쓴 편지에 그 어머니 또한 이 나라 독립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피눈물을 담아(흘리며) 보내 모정의 편지이다.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아들 안중근 또한 1910년 3월 뤼순 옥중에서 최후의 유언을 통해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오. 대한독립의 함성이 천국까지 들려오면 나는 기꺼이 춤을 추면서 만세를 주룰 것이오.” 라고 최후의 순간까지도 대한독립에 대한 애절하고 간절한 마음을 남겼다.

[사진으로 함께한 역사 탐방, 안중근 의사의 영정이 모셔진 해동사]

안중근 의사 영정 (사진촬영 / 조경륜)
안중근 의사 영정 (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 안중근 의사 추모 역사관 (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 안중근 의사 추모 역사관 (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 안중근 의사 추모 역사관(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 안중근 의사 추모 역사관(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입구(사진촬영 / 조경륜)
장흥 해동사  입구(사진촬영 / 조경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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